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레올로고스 왕조 (문단 편집) == 기원 == 팔레올로고스(Παλαιολόγος)라는 성씨를 해석하면 "오래된(palai)[* [[고생대]](Paleozoic Era), [[팔레오세]]의 어원이다.] 말(언어 : logos)"이 되는데, 이 성씨의 뜻은 분명하지 않다. 팔레올로고스 가문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로마노스 4세]] 시대다. 니키포로스 팔레올로고스(Νικηφόρος Παλαιολόγος)가 그 시조인데, 그는 [[만지케르트 전투]]의 패배 이후 프랑크인 바이욀(Bailleul) 출신의 루셀(Rousell)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병사들이 도망치는 바람에 전투에서 패배했다. 루셀의 반란은 후일 황제가 되는 청년 [[알렉시오스 1세|알렉시오스 콤니노스]]가 진압하게 된다. 이후 [[미하일 7세]]는 그를 메소포타미아의 절도사(στρατηγός, 스트라티고스)로 보냈는데, 니키포로스 팔레올로고스는 [[니키포로스 3세|니키포로스 3세 보타니아티스]]를 도와 미하일 7세를 내쫓았다. 니키포로스의 아들 [[요르요스 팔레올로고스]](Γεώργιος Παλαιολόγος)는 [[알렉시오스 1세|알렉시오스 콤니노스]]의 아내이자 훗날 황후가 되는 [[이리니 두케나]]의 동생인 안나 두케나와 결혼했고, 동서 알렉시오스의 쿠데타를 도왔다.[* 다만 [[알렉시아스]]에 의하면 사전에 포섭해놓은 상태조차 아니었고, 쿠데타 당시에도 그렇게 쉽게는 설득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쿠데타 과정 중에 '''아버지와 아들이 군대를 이끌고 수도 시내에서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고, 결국 니키포로스 3세가 퇴진하면서 알렉시오스 콤니노스가 [[알렉시오스 1세]]로 즉위하게 된다. 쿠데타 성공 이후 요르요스는 [[디라히온]]의 도독(δούξ, 둑스)으로 임명되었고, [[로베르 기스카르]]와 그 아들 [[보에몽 1세|보에몽]]의 침략 때 군대를 이끌며 활약했다. 자세한 내용은 [[디라히온 공방전]] 항목 참고. 여담으로 이때 황제 알렉시오스 1세에게 얼마나 자주 보고를 했는지 '쿠로필라티스(Kouropalates)이자 디라히온의 관구장인 요르요스 팔레올로고스'라는 인장 유물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렇게 황실과 강력한 연결을 가지고 되고 전공도 쌓으면서 이후 팔레올로고스 가문은 중요 명문가가 되었으며, [[테오도로스 1세|테오도로스 라스카리스]]가 [[니케아 제국]]을 세울 때도 함께하고 제국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